84만 동부권에 정말 필요한 건 '국립 의대 간판'일까요?
- 순천 낙점 이후 서부권 반발 극심… 제로섬 게임의 한계
- 승패 논리 벗어나 지역 의료 생태계 살릴 상생안 시급
의대 유치라는 길고 긴 마라톤의 결승선 테이프를 순천이 끊었다.
하지만 축포는 터지지 않았다. 오히려 거대한 후폭풍이 전남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다.
정부는 목포대와 순천대 중 한 곳을 골라 신청하도록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재량을 주었다.
평가 절차를 거쳐 순천이 최종 후보지로 낙점됐다.
그러나 승패가 갈리자 탈락한 서부권의 반발은 극에 달했다.
수십 년 묵은 동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의대가 지역을 살릴 구원투수가 아니라, 갈등의 뇌관으로 전락한 셈이다.
진짜 문제는 순천의 승리나 목포의 패배가 아니다.
승자와 패자를 갈라놓은 제로섬 게임의 구조 그 자체다. 전남의 열악한 의료 현실은 동부와 서부를 가리지 않는다.
한쪽의 생명권을 볼모로 다른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방식은 행정 편의주의의 극치다.
정치적 수사에 휩쓸려 지역민의 실질적 생명권이라는 본질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더구나 간판을 달고 건물을 올린다고 의료 위기가 당장 해결되지는 않는다.
수천억 원을 들여 멋진 병원 건물을 지어도 정착할 의사가 없다면 거대한 콘크리트 상자에 불과하다.
연봉 4~5억 원을 내걸고도 의사를 구하지 못해 응급실 문을 닫는 지방 병원들의 참상을 우리는 이미 목격하고 있다.
정작 84만 동부권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대학 간판'이 아니라, 밤중에 아이가 아플 때 달려갈 수 있는 응급실이다.
이제 소모적인 감정싸움을 멈춰야 한다.
순천은 승리감에 취하기보다 서부권의 상실감을 다독이는 대승적 포용력을 보여야 한다.
정치권 역시 "어디에 건물을 지을 것인가"라는 입지 싸움을 끝내야 한다.
"어떻게 실력 있는 의사를 정착시킬 것인가"라는 정주 인프라 생태계로 논의의 판을 바꿔야 한다.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남 전체를 아우르는 촘촘한 의료망을 짜는 것.
벽돌을 쌓는 안배보다 의사가 살고 싶어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지역민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진짜 정치가 능력을 증명해야 할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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